다른 사람의 인생을 사는 여자의 이야기. 정확하게는 나의 존재를 부정해야 살 수 있는 여자의 이야기.
비로소 '쓰레기'가 된 이 장면에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미스테리 영화의 긴박하고 눈에 보이는 확실한 자극을 기대했으나 정반대의, 그러니까 모호하면서도 감상적인 이미지들을 보게 되어, 영화를 보는 내내 전혀 다른 기대감과 싸워야 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선입견이었던거고 나의 어긋난 기대감에서부터 무관심하고 무감각의 공포에 사로잡히기까지 군더더기없이 깔끔하고 건조하게 보여준다. 그러한 불친절함에 비해 주인공 김민희의 존재감이 크게 느껴졌는데 영화가 주는 공포를 아름답고 섬세하게 보여주었다는 장점이 되지만, 그 아름다움에 취해 정작 영화가 의도하는 공포에 빠지기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는 단점이 되기도 했다. (결론은 김민희가 갑이다)
여러 평론가들은 이런 비극이 개인이 겪는 경제문제에 대한 국가의 책임이라는 대의로 해석하지만 그건 좀 오버인 것 같고, 그것보다 이 영화를 보는 나는 사회의 소외된 피해자도 될 수 있지만 가해자도 될 수 있다는 것에 섬뜩함을 느낀다. 나와 가장 비슷한 사람을 골라 그 사람의 취약점을 파고든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 취약점 역시 내가 잘 알고 있다. ... 괴물이 되는 것은 어렵지 않다는 것, 무섭다.



